인생을 역전 시키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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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2-14 00:10본문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에스더 9장 22절)
하만의 모략을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믿음과 결의로 극복한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죽으면 죽으리라" 는 믿음으로 행동하면 반드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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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는 믿는 성도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믿음의 여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한 후, 바사 왕 고레스의 귀환령에 의해 5만여명의 유대인들이 스룹바벨의 영도 하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사 제국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에스더는 바사 나라에 잔류해서 살고 있던, 소위 ‘흩어진 유대인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더는 민족적으로는 나라를 잃은 비운의 시대에 이방 땅에서 태어나서, 개인적으로는 일찍이 부모를 여읜, 가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한 믿음의 여인 에스더]
하지만 에스더는 인간적으로 불우한 형편에 있을 때에도,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에스더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삶의 어려움을 인해서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환경탓, 자리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풍부에 처하든지 궁핍에 처하든지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여인이었습니다(빌 4:12-13 참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두셔서 그의 뜻을 이루도록 하신 삶의 자리를 탓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지금 처한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잘 이루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환경이 바뀌고 자리가 좋아지면 무슨 신세계가 열릴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자리가 있고, 자기 위치, 자기 본분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에스더가 어려운 중에서도 이렇게 신앙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였고, 둘째는 모르드개의 신앙적 양육을 통해서였습니다. 에스더의 사촌오빠 모르드개는 신앙의 사람으로, 에스더를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했습니다. 모르드개는 말로만 신앙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삶의 모범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비록 에스더는 어릴 때부터 험난한 세월을 보냈지만, 모르드개를 통해 신앙적 양육을 잘 받아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세상적으로는 하나님께 복을 못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을 넘치게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에스더]
에스더가 어떻게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되었는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와스디를 폐하고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구하여 새 왕후를 간택하게 되었을 때 많은 후보 처녀들 가운데서 에스더가 뽑혀 왕후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왕의 사랑을 받으면서, 왕궁에서 굉장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편안한 때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궁에서의 평화는 잠깐뿐이었고, 곧 위기와 시련의 때가 찾아왔습니다. 바사의 총리 대신 하만의 음모로, 그해 12월 13일에 바사 제국 내의 모든 유대인들을 다 죽이고 그 재산도 모두 탈취하라는 조서가 공포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전멸의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서가 공포되자 모르드개를 비롯한 각도의 유대인들은 애곡하고 금식하며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이 조서의 내용을 에스더에게 알리면서 유대인의 구원을 위하여 왕에게 나아가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바사의 법은 누구든지 왕의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왕에게 나아가면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지가 30일이나 되었습니다. 만일 에스더가 유대 민족의 구명을 위하여 왕의 부름 없이 왕에게 나아갔다가, 자칫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에스더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에스더가 이 큰 선택의 기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었습니까?
에스더가 큰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영적으로 일깨우는 말을 했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너 홀로만 면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만일 잠잠하면 유대인들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겠으나 너와 네 아비의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지금 왕후로 있는 것이 이때에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함인지 누가 아는가?”(에 4:13-14). 에스더가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기이한 섭리로 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에스더에게 일어난 것은 에스더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에스더를 일깨우는 말을 한 것입니다. 에스더가 그 말 한마디에 크게 정신을 차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밝히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영적으로 일깨우는 말을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필요한 말을 해주되, 사랑을 가지고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참된 것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결과를 떠나서 최선의 신앙적 선택을 한 에스더]
모르드개의 조언을 겸손히 받아들인 에스더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 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왕궁 안뜰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에스더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최선의 신앙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약속에 비추어 신앙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였습니다. 죽을 수도 있었지만, 결과를 떠나서 최선의 신앙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 일을 하다가 죽더라도 이것이 옳다, 이것이 신앙적 선택이다’ 하는 확신에 차서 에스더가 그 옳은 선택을 하고 결심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당장 좋은 결과가 나와야 승리요 복이라는 논리를 폅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내’가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생활은 맨날 무모하게 죽을 궁리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생활은 맨날 살 궁리만 하고 손해 안 볼 생각만 하면서 얄팍하게 실익을 따라 사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옳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고 했던 에스더는 일부러 죽으려고 했던 말이 아닙니다. 진리를 위하여, 가장 가치있는 것을 위하여 끝까지 살겠다고 하는 삶의 의지를 피력한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하는 것은, 훗날 우리가 죽을 때 내가 무엇을 위해 죽었느냐 하는 것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다가 죽고자 합니까?
[신앙적 선택을 한 후에 신앙적 방법으로 일한 에스더]
에스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심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왕에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그 구체적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남아있습니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고 해서 그냥 덤비지 않았습니다. 다른 인간적인 방편들, 비신앙적이고 악한 방법들을 있는 대로 동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에 의지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신앙적 방법을 택했습니다. 에스더는 먼저 3일 동안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하나씩 받고자 하였습니다. 기도하면서 왕에게 나아갔고, 왕에게 나아간 후에도 육신의 혈기대로 하지 않았고, 매우 지혜롭고 질서있게, 신중하고 현명하게 처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는 때를 잘 기다렸습니다. 끝까지 신앙적 방법으로 일했습니다. 그랬을 때에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통해서 바사 제국에 흩어져 있던 모든 유대인들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자타의 구원에 큰 유익을 끼친 것입니다.
우리도 이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자리탓 하지 말고, 궁핍에 처하든지 풍부에 처하든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갑시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의 신앙적 선택을 합시다. 신앙적 조언을 중히 여기면서 겸손히 나갑시다. 기도하면서 나갑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매일매일 끝까지 살아가다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과 자타의 구원에 가장 유익되도록 우리의 삶을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출처 : 양의문교회)
하만의 모략을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믿음과 결의로 극복한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죽으면 죽으리라" 는 믿음으로 행동하면 반드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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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는 믿는 성도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믿음의 여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한 후, 바사 왕 고레스의 귀환령에 의해 5만여명의 유대인들이 스룹바벨의 영도 하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사 제국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에스더는 바사 나라에 잔류해서 살고 있던, 소위 ‘흩어진 유대인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더는 민족적으로는 나라를 잃은 비운의 시대에 이방 땅에서 태어나서, 개인적으로는 일찍이 부모를 여읜, 가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한 믿음의 여인 에스더]
하지만 에스더는 인간적으로 불우한 형편에 있을 때에도,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에스더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삶의 어려움을 인해서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환경탓, 자리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풍부에 처하든지 궁핍에 처하든지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여인이었습니다(빌 4:12-13 참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두셔서 그의 뜻을 이루도록 하신 삶의 자리를 탓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지금 처한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잘 이루며 복음을 증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환경이 바뀌고 자리가 좋아지면 무슨 신세계가 열릴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자리가 있고, 자기 위치, 자기 본분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에스더가 어려운 중에서도 이렇게 신앙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였고, 둘째는 모르드개의 신앙적 양육을 통해서였습니다. 에스더의 사촌오빠 모르드개는 신앙의 사람으로, 에스더를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했습니다. 모르드개는 말로만 신앙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삶의 모범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비록 에스더는 어릴 때부터 험난한 세월을 보냈지만, 모르드개를 통해 신앙적 양육을 잘 받아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세상적으로는 하나님께 복을 못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을 넘치게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에스더]
에스더가 어떻게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되었는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와스디를 폐하고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구하여 새 왕후를 간택하게 되었을 때 많은 후보 처녀들 가운데서 에스더가 뽑혀 왕후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왕의 사랑을 받으면서, 왕궁에서 굉장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편안한 때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궁에서의 평화는 잠깐뿐이었고, 곧 위기와 시련의 때가 찾아왔습니다. 바사의 총리 대신 하만의 음모로, 그해 12월 13일에 바사 제국 내의 모든 유대인들을 다 죽이고 그 재산도 모두 탈취하라는 조서가 공포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전멸의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서가 공포되자 모르드개를 비롯한 각도의 유대인들은 애곡하고 금식하며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이 조서의 내용을 에스더에게 알리면서 유대인의 구원을 위하여 왕에게 나아가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바사의 법은 누구든지 왕의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왕에게 나아가면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지가 30일이나 되었습니다. 만일 에스더가 유대 민족의 구명을 위하여 왕의 부름 없이 왕에게 나아갔다가, 자칫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에스더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에스더가 이 큰 선택의 기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었습니까?
에스더가 큰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영적으로 일깨우는 말을 했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너 홀로만 면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만일 잠잠하면 유대인들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겠으나 너와 네 아비의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지금 왕후로 있는 것이 이때에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함인지 누가 아는가?”(에 4:13-14). 에스더가 바사 제국의 왕후가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기이한 섭리로 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에스더에게 일어난 것은 에스더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에스더를 일깨우는 말을 한 것입니다. 에스더가 그 말 한마디에 크게 정신을 차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밝히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영적으로 일깨우는 말을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필요한 말을 해주되, 사랑을 가지고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참된 것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결과를 떠나서 최선의 신앙적 선택을 한 에스더]
모르드개의 조언을 겸손히 받아들인 에스더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 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에스더는 목숨을 걸고 왕궁 안뜰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에스더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최선의 신앙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약속에 비추어 신앙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였습니다. 죽을 수도 있었지만, 결과를 떠나서 최선의 신앙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 일을 하다가 죽더라도 이것이 옳다, 이것이 신앙적 선택이다’ 하는 확신에 차서 에스더가 그 옳은 선택을 하고 결심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당장 좋은 결과가 나와야 승리요 복이라는 논리를 폅니다. ‘내’가 손해를 보고, ‘내’가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생활은 맨날 무모하게 죽을 궁리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생활은 맨날 살 궁리만 하고 손해 안 볼 생각만 하면서 얄팍하게 실익을 따라 사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옳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고 했던 에스더는 일부러 죽으려고 했던 말이 아닙니다. 진리를 위하여, 가장 가치있는 것을 위하여 끝까지 살겠다고 하는 삶의 의지를 피력한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하는 것은, 훗날 우리가 죽을 때 내가 무엇을 위해 죽었느냐 하는 것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다가 죽고자 합니까?
[신앙적 선택을 한 후에 신앙적 방법으로 일한 에스더]
에스더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심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왕에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그 구체적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남아있습니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고 해서 그냥 덤비지 않았습니다. 다른 인간적인 방편들, 비신앙적이고 악한 방법들을 있는 대로 동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에 의지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신앙적 방법을 택했습니다. 에스더는 먼저 3일 동안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하나씩 받고자 하였습니다. 기도하면서 왕에게 나아갔고, 왕에게 나아간 후에도 육신의 혈기대로 하지 않았고, 매우 지혜롭고 질서있게, 신중하고 현명하게 처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는 때를 잘 기다렸습니다. 끝까지 신앙적 방법으로 일했습니다. 그랬을 때에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통해서 바사 제국에 흩어져 있던 모든 유대인들의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자타의 구원에 큰 유익을 끼친 것입니다.
우리도 이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자리탓 하지 말고, 궁핍에 처하든지 풍부에 처하든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갑시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의 신앙적 선택을 합시다. 신앙적 조언을 중히 여기면서 겸손히 나갑시다. 기도하면서 나갑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매일매일 끝까지 살아가다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과 자타의 구원에 가장 유익되도록 우리의 삶을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출처 : 양의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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