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신학교를 가기 전이었습니다. 때때로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고, 풀지 못하는 과제를 안고 있으면, 새벽어둠을 헤치고 서울-공주 간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리곤 했습니다. 세 시간을 넘나드는 시간 끝에 마주하는 기도원 원장님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그분은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 놓고, 말없이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다시 운전대를 잡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왕복 여섯 시간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 답답한 마음은 풀리고, 공주의 새벽 공기와 은은한 찻잔의 온기는 하루를 버틸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 기도원도, 원장님도 빈자리로만 남았지만 그곳은 여전히 제 마음속 쉼터로 남아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어느새 제가 비슷한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천안 BRC에서 저수지까지 걸어가려면 약 삼십 분, 무인 카페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가 또 삼십 분, 돌아오는 길이 삼십 분.. 걷는 걸음 사이사이에 흘러나오는 대화를 모두 합해 한 시간 반쯤 됩니다.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200년 버텨온 느티나무와 쓰러진 옛 담벼락의 숨구멍은 사람의 늙음만큼 쓰러져있으나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이른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시골길을 다시 삼십 분 걸어 식당에 들르고, 그 옛날 경양식집에서 먹은 돈가스를 먹은 후  되돌아오는 데 또 삼십 분. 두 시간 남짓 ‘걷는 대화’가 이어집니다.

햇살과 바람을 받아내며 천천히 걸어가는 길, 요즈음 보기 드문 해 질 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는 순간마다 그 옛 기도원의 새벽이 겹쳐집니다. 그때 제가 받았던 위로와 평안을 이제는 누군가에게 건네주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